홍명보 감독. (서울=연합뉴스) |
대한축구협회가 1일 공개한 2024년 제10차 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적어도 홍명보 대표팀 감독이 전력강화위원회의 '1순위 후보'가 되는 과정에는 절차적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회의록에는 홍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택되는 과정의 일단이 상세하게 드러난다.
축구협회는 회의록의 대다수 위원 이름을 익명 처리해 공개했다.
이 회의는 지난 6월 21일 오전 8시 30분께 서울 종로구의 모처에서 진행됐다.
정해성 당시 위원장을 포함, 총 11명 위원 중 10명이 참석했다. 회의를 앞두고 위원직 사임 의사를 밝힌 박성배 숭실대 감독만 빠졌다.
여기에 더해 축구협회 기술 분야 행정을 총괄하는 김대업 기술본부장이 참석했고, 또 한 명의 축구협회 직원이 '간사'로 회의 진행을 도왔다.
'촉박한 분위기'가 회의 전반에서 느껴진다. 앞서 전력강화위원회가 제시 마쉬 현 캐나다 대표팀 감독을 영입하는 데 실패하면서 대표팀은 두 차례나 임시 감독 체제로 A매치 기간을 소화한 터였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이 시작되는 9월 A매치 전까지는 반드시 정식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위원들 대다수가 공유하고 있던 걸로 보인다.
그러나 박주호(해설위원) 위원은 좀 다른 입장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는 회의를 좀 더 진행하며 감독 후보 각각의 특징과 강점을 평가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원했다. 그 후보 중에는 자신이 마지막 날 새롭게 추천한 다비드 바그너 감독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위원들은 최대한 빠르게 절차가 진행되기를 원했다. 특히 고정운(김포FC 감독) 위원이 '빠른 진행'에 주도적이었다.
회의는 바그너 감독을 포함한 후보 3명의 경기 영상을 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세 감독 모두 박주호 위원이 추천한 감독들이었다.
경기 영상을 본 뒤 고정운 위원은 "영상만 보고 용병을 뽑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라면서 "어쨌든 우리는 대표팀 감독을 뽑는 것이니, 철학도 중요하지만, 대표팀에 대한 경험, 월드컵에 대한 경험이 높은 위치에 놓고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후 위원들 추천 수에 따라 정해성 위원장이 면접을 하면 좋을 최종 후보를 정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이 추천이 '투표'의 성격을 갖는 것인지, 후보별로 순위를 매기면서 추천해야 하는지, 정 위원장이 반드시 위원들의 추천을 합산한 순위에 따른 순서로 후보들을 접촉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논의가 이어진다.
결국 최종 순위를 정하는 방식 등 모든 결정 권한을 정 위원장에게 위임하는 것에 박주호 위원을 포함한 모든 위원이 동의한다.
박주호 위원과 함께 '젊은 축'에 속한 이상기(QMIT 대표) 위원도 "이번에는 우리가 사실 검증을 다 한 것 같다. 영상도 보았고, 여기에서 또 체크할 부분 있으면 따로 체크하면 된다"면서 "이 안에서 확신 딱 드시면 그냥 나가셔서, 이야기 나눠본 다음에 협상 진행하고 사인해도 될 것 같다"며 정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위원들로부터 각각 7표씩을 받은 홍 감독과 바그너 감독, 6표를 받은 거스 포예트 감독에 이어 헤수스 카사스 이라크 대표팀 감독, 그레이엄 아널드 당시 호주 대표팀 감독까지 5명의 감독이 최종 후보가 됐다.
이 중 현직 대표팀 감독이던 카사스, 아널드 감독은 최종 후보군에서 제외됐고, 정 위원장은 홍 감독과 바그너 감독, 포예트 감독을 최종 후보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게 보고한다. 정 위원장은 홍 감독을 '1순위 후보'로 결정해 보고했다.
1차 회의록을 보면 홍 감독이 1순위 후보가 되는 과정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정 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감독 선임 작업을 이어받으면서 다른 문제가 생겼다.
정 회장은 정 위원장에게 홍 감독뿐 아니라 바그너, 포예트 감독도 면담할 것을 제안했다.
10차에 걸친 회의에 지칠 대로 지쳐 안면마비 증상까지 보이는 등 건강이 악화한 정 위원장은 사의를 표했고, 이 기술이사가 정 회장 지시에 따라 감독 선임 업무를 이어받았다.
정 위원장 사퇴와 함께 다수의 전력강화위원이 사의를 밝힌 가운데, 이 기술이사는 남은 5명의 위원에게 자신이 감독 선임 업무를 이어받는 것에 대한 동의를 온라인 임시회의를 통해 구했다.
박주호 위원을 비롯한 위원들은 '남은 절차도 투명하게 진행할 것'을 전제로 동의한다. 하지만 이 기술이사의 일 처리는 위원들이 요구한 '투명한 진행'과는 거리가 있었다.
바그너, 포예트 감독을 만나고 귀국한 이 기술이사는 홍 감독과 대면하기 전 위원들에게 진행 상황을 공유하지 않았다.
'자격이 없는 위원장 대행'이 대표팀 감독 선임에 관여했다고 볼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는 홍 감독 선임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는 측의 주요 근거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정 위원장, 그리고 전력강화위의 감독 선임 관련 업무는 '10차 회의'에서 끝났다는 입장이다.
이 기술이사는 전력강화위가 최종적으로 정한 후보 순위에 따라 '협상을 위한 면담'을 진행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앞서 국회 현안질의를 앞두고 이 기술이사와 5명의 위원 간 '온라인 임시회의'를 '11차 회의'로 지칭한 자료가 국회의원들에게 전달됐는데, 이는 서류 작성상 착오에 불과하다고 축구협회는 주장한다.
홍 감독은 축구협회 이사회 의결을 거쳐 최종적으로 감독으로 선임됐다. 선임 작업을 마무리 짓는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축구협회 최고 의결 기구인 이사회의 결정을 되돌릴 만큼 중대한 흠결인지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일 오전 홍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중간 발표한다.
문체부가 온라인 임시회의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지, 이 기술이사가 감독 선임 업무를 이어받은 것의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강종훈 기자 sports@thesportstimes.co.kr